카테고리 없음

[글로벌인재포럼 2014] 노벨상 수상자 21명 배출한 취리히연방工大 총장 "진정한 혁신이란 ..."

한경사업국 2014. 11. 17. 16:00
기사프린트 창닫기
입력: 2014-11-16 21:08:09 / 수정: 2014-11-17 10:28:06
월요인터뷰

노벨상 수상자 21명 배출한 취리히연방工大 총장 "진정한 혁신이란 아무런 혁신 정책을 내놓지 않는 것"

"교수에게 순종하지 말고 도전하며 논쟁하라 
창업 아이디어 심사시 '3분 스피치' 못하면 탈락시켜
창의적인 사람들은 절대 관리직에 앉히면 안 돼"
랄프 아이흘러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총장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끌어올리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랄프 아이흘러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총장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끌어올리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혁신이란 아무런 혁신 정책을 내놓지 않는 것입니다. 혁신 주체들이 스스로 자각해 행동해야 비로소 진정한 혁신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대학이자 영국 대학평가기관 QS의 ‘세계대학평가 2014’에서 12위를 차지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랄프 아이흘러 총장(67)의 ‘대학 혁신’에 대한 소신이다. 그는 “이것은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스위스 정부의 오랜 방침이기도 하다”며 “외부에서 혁신을 명목으로 특정 정책을 강요하면 그것은 이미 혁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지시’를 수행하는 일이 돼 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흘러 총장은 지난 4~6일 성황리에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4’의 연사로 초청받아 방한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인재포럼 행사 장소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이뤄졌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대학 총장이기에 인상이 매우 깐깐하리라는 상상과는 달리 첫인상은 이웃집 할아버지같이 푸근하고 소탈했다. 편안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전달된 그의 메시지는 그러나 매우 날카롭고 꼼꼼했다.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비결이 따로 있겠습니까.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교수들이 지도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렇지만 취리히연방공대에선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언제든지 나와 싸우라’고 말합니다. 절대로 자신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아요. 학생들이 교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수평적 관계에서 함께 논쟁해야 학생과 교수 모두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 발전의 결과가 노벨상 아니었을까요. 학생은 더욱 열심히 공부할 계기를 얻는 것이고,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며 자신의 강의노트를 개선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죠. 이것은 취리히연방공대가 설립된 1855년부터 이어진 전통입니다.”

▷교수와 논쟁하려면 학생들이 그만큼 공부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요.

“맞습니다. 스스로 실력을 쌓지 않으면 도태합니다. 스위스를 비롯해 유럽 대다수 국가에선 대학에서 등록금을 받지 않습니다. 유럽 각국에선 전체 인구 중 약 20%만 대학에 갑니다. 그중 이공계 분야 최고의 영재들이 모인 곳이 취리히연방공대고요. 그 영재들을 국가 세금으로 가르치는데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안 한다는 게 이상하지요. 우리 대학 학부생은 1만4000명 정도입니다.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3900여명이고요. 학부생 중 매년 졸업하는 학생은 졸업 대상자 중 4분의 1인 1000명 안팎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졸업 시험에서 떨어져요. 창업하려는 학생도 많고, 취업률도 높기 때문에 제때 졸업하지 못하면 그만큼 손해죠.”

▷교수진과 학생들의 외국인 비율이 높습니다.

“취리히연방공대에는 110여개국에서 유학을 옵니다.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이 많습니다. 최근엔 중국, 일본 등 아시아 학생 비율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총 500여명인데 이 중 80%가 외국인입니다.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야 대학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창업을 많이 하는 대학으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대학에선 큰 틀과 대략의 밑그림만 그려줄 뿐입니다. 학생들에게 연구와 취업 말고도 창업의 길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죠. 산학협력을 예로 들자면 매년 UBS와 크레디트스위스 등 스위스 10개 대기업이 공동으로 취리히연방공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을 엽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창업 자금을 지원하거나 경영학, 회계 등을 가르치는 과정은 없습니다. 그건 학생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에요.”

▷자금을 학생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창업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것 또한 큰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이나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해준다면 당장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의 창업 자생력을 잃게 만들어요. 외부 도움에만 의지하게 하니까요. 그것은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라 말할 수 없지요.”

▷어떤 방식으로 창업 아이디어를 심사·지도합니까.

“학생들에게 자신이 고안한 창업 아이템에 대해 교수진과 다른 학생들 앞에서 3분 동안 요약해서 말하도록 합니다. 교수들이 창업을 원할 때도 똑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3분 스피치’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면 해당 아이디어를 보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권합니다. 학생과 교수 모두 연구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창업 준비 때는 매우 서투릅니다. ‘3분 스피치’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창업 준비자들에게 요구하는 명료하고 신속한 의견 전달 능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죠. 다만 교내에서 따로 공모전을 열지는 않습니다.”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업이야말로 젊은 과학도들에게 자립할 기회를 주고, 자신이 공부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합니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취리히연방공대에서 280개의 스타트업이 생겼습니다. 신규 특허 출원도 매년 약 80개에 달합니다. 물론 처음엔 스타트업과 기업가 정신이 왜 중요한지 일깨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처럼 학내에 기업가 정신이 충만해지기까지 15년이 걸렸습니다. 대부분 평생 연구자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입학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기초과학 분야는 강한데 상용화 부문은 미국에 밀렸죠.”

▷창업의 선순환이 중요하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세 가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습니다. 기초과학 부문은 취리히연방공대의 자랑이자 모든 학문의 뿌리입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어떻게 상용화할지 고민하고, 그걸 창업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나무의 줄기와 열매로 각각 비유할 수 있겠죠. 뿌리나 줄기, 열매만 존재해서는 나무라고 말할 수 없지요.”

▷학생들의 창의력을 계속 살려나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창의적인 사람의 특징은 내적 에너지가 매우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때로 그 에너지는 일반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지요. 그 때문에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선 우선 지도할 때 수직적 시선이 아니라 수평적 시선으로 학생들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반발하고 자신을 가둬 버려요. 특히 창의력 넘치는 학생들을 지도할 땐 ‘이것이 창의력’이란 정의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합니다. 그게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절대로 조직을 관리하는 자리를 주면 안 됩니다. 기업 임원직이든 정부 관료직이든 학교 교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혁신과 조직관리의 재능은 다르다는 의미인가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조적입니다. 혁신을 이끄는 사람들은 창의력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철학이 아주 확고하기 때문에 조직관리자가 되면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가장 괴로워하고요. 반면 조직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창의력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의견을 조정하는 능력과 친화력, 치밀한 경영 능력이 돋보입니다. 각자의 재능을 잘 살려 주는 것 또한 교육과 사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와 대학 총장 중 어느 쪽 재능이 더 크다고 자평하십니까.

“저야 당연히 조직관리 쪽 아닐까요. 7년째 대학 총장을 하는 것 보면 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력이 뛰어난 고급 영재와 최정상급 교수진과 함께한다는 것은 학자로서도 대학 총장으로서도 정말 큰 기쁨입니다.”

랄프 아이흘러 총장은
5살 때부터 물리학자 꿈꿔…프랑스·라틴어 등 5개 언어 능통

랄프 아이흘러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총장(67)은 출생지만 영국일 뿐 줄곧 스위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다섯 살 때부터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과학 관련 책과 장난감을 선물로 받고, 주변에서 쉽게 과학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지만 외국어와 인문학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에 능통하며 라틴어와 그리스어 고전도 술술 읽는다.

△1947년 영국 출생 △스위스 바젤 뮌스터플라츠 김나지움(고등학교) 졸업 △1972년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물리학과 졸업 △1976년 취리히연방공대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 △2002~2007년 스위스 폴셰러연구소(PSI) 소장 △2007년~현재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총장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기사프린트 창닫기